1452년5월14일
문종 사망, 단종 즉위.
김종서는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종친들 견제하고, 혜빈양씨는 궁궐 내에서 실세가 됨.
1453년10월10일
계유정난 발생.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죽임으로써 정치권력을 획득 함.
1455년6월11일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혜빈양씨와 금성대군을 숙청 지시.
금성대군과 친하다는 이유로 영양위 정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감.
(이때의 유배는 정종 혼자 감)
경혜공주 충격으로 쓰러짐.
1455년6월17일
단종은 정종의 석방을 수양대군에 요구.
정종의 유배지가 강원도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으로 변경
1455년 6월경
왕의 자리를 포기한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고, 수양대군 즉위
1455년8월2일
영양위 정종의 유배지 경기도 수원으로 다시 변경.
경혜공주 남편을 따라 감.
이후 삼사의 항의로 다시 김포 통진으로 유배지 변경.
역시나 경혜공주 따라 감.
1456년06월01일
사육신 사건 발발
1456년06월27일
사육신 사건으로 인해 정종 전라도 광주로 유배지 변경되고,
연금된 상태로 지냄. 역시 경혜공주 따라 감.
1456년7월-12월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출산.
정미수를 1459년에 출산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공식기록은 1456임.
1457년09월02일
수양대군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 사망.
1457년10월21일
단종 사약 받고 사망.
금성대군 사약받고 사망.
1457년-1461년
단종 사망이후 정종은 스님들과 어울리며 엄청난 분노 표출.
정종의 일거수 일투족 수양대군에게 그대로 보고 됨.
1461년 7월26일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고, 경혜공주는 전라도 순천의 관비로 감.
(정종의 행동을 반역으로 판단한 듯,
그리고 맥락으로 보아 반란 모의를 한 듯 함)
당시 경혜공주는 딸을 임신한 만삭 상태.
1461년7월-10월
고문받던 영양위 정종의 발언들
"내가 충신이 되어 주상에게 죄를 얻었으니 무슨 고통이 있겠는가?"
(단종에게 있어 충신이란뜻)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는 질문에
"빨리 상은(上恩)을 입고 싶다"고 응수.
(즉, 빨리 죽여달라는 말)
1461년10월20일
정종 사형(능지처참)
1461년10월23일
수양대군 경혜공주를 한양으로 불러 올리라 명령을 내림.
1461년11월말-12월초
경혜공주 한양에 도착.
(세조가 명령을 내린지 1개월~1개월 보름 걸렸음)
노비이므로 걸어서 이동했을 것을 고려하면, 적절한 시간임.
(게다가 그녀는 산모이다)
1461년12월14일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에게 경혜공주를 박대하지 말 것을 요청하자,
세조는 재물을 주라고 명령 내림. (아마도 서울로 불러 올려놓고 박대한 듯.)
그런데, 이 시기 경혜공주는 노비신분 임.
따라서 한양도착 후 보름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안 취했다면,
노숙해야 함.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한 겨울에 얼어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거야 원.
더우기 딸은 갓난애기.
(즉, 산모를 한 겨울에 한양으로 불러들인 것 자체가 황당한 일임.)
1461년말 - 1462년
경혜공주는 아들과 딸을 궁으로 들여보내고, (정희왕후가 거둬 들인 듯)
본인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됨.
(즉 수양대군을 거부 함)
1465년3월경
경혜공주 갑작스레 스님생활 청산하고 환속하여 수양대군이 준 집에서 생활.
1465년04월01일
경혜공주 궁으로 들어가 수양대군 만남.(수양대군 죽기 3년 전임)
수양대군은 이 자리에서 경혜공주의 자식들에게 걸려 있는 "연좌제"를 풀어 주겠다 함.
하지만 경혜공주와 그 자식이들 종친으로 인정받는 것은 예종 때임.
(수양대군 이 놈 좀 웃기는 놈임. 뭐든 말만 할 뿐 행동은 하나도 안하는 듯.)
1465년4월이후
경혜공주 궁 출입이 잦아 짐.
(이 시기에 정희왕후와 급격히 친해지는 것 같음.)
뭔가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음. 이후의 사건들도 심상찮고.
1467년
어느시기 한명회와 신숙주가 모반을 모의했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수양대군의 수족이 잘림)
이시애의 난이 일어남. (난은 진압되고, 한명회 등은 누명을 벗고 풀려 남)
1468년09월06일
온 몸에 난 종기로 인해 고생하던 수양대군 사망. 예종 즉위
예종의 장인은 한명회이며, 한명회는 영의정에 오름.
(이미 수양대군 말년부터 사실상 권력은 한명회를 위시한 신하들에게 다시 넘어간 상태였음)
이대에 이르러서야 경혜공주는 드디어 종친으로 인정받음.
1469년12월
예종 사망. 성종 즉위
성종의 부인은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한명회 딸 2명이 연속으로 왕후가 된 거임)
하지만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함으로 인해 한명회의 권력은 상당히 축소.
1473년04월05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가 관직에 오름. (돈녕부 직장)
신하들은 강력히 반대하나, 수렴청정하던 정희왕후는 그대로 밀어붙임
1473년12월28일
경혜공주 병으로 사망
남편 영양위 정종 곁인 경기도 고양에 해주 정씨 선산에 묻임.
드라마에선 과연 어떻게 그려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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