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난징의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았던 나치당원, 욘 라베
욘 라베. 그는 지멘스 회사의 간부이자 나치당원으로 1937년 2차세계대전 당시 난징에 머물고 있었다.
중일전쟁이 계속되면서 난징에 폭격이 퍼붓기 시작했고 많은 서양인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욘 라베도 난징을 떠나려고 했지만
그가 리무진을 타고 떠나려고 할때 붙잡고 태워달라고 울부짖는 중국인들을 보고는 결코 떠날수가 없었다.
욘 라베는 탈출을 포기하고 그와 뜻을 같이한 여러 선교사들과 함께 일부 구역을 '난징의 안전지대'로 선포했으며
그 국제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독일에서도 지위가 높은 나치당원이었기에 일본군이 함부로 하지 못할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방공호에 폭격을 막기 위해서 거대한 하켄크로이츠기로 이를 덮었고 스스로 나치완장을 차고 구호활동을 계속했다.
또 자신의 집을 개조해서 중국인들을 수용했으며 그러는 와중에 평생 모았던 사재를 탕진했다
아무리 일본군이라도 동맹군의 고위직에 있던 라베를 함부로 할수 없었기 때문에 안전지대를 침범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일본군에 의해 추방되어 독일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그 와중에 안전지대를 통하여 난징을 탈출, 살아남을수 있었던 시민의 수는 약 20만~25만으로 추정된다.
그가 추방당할때 난징에 남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했으며 3천명의 여성이 길가에 무릎을 끓고 감사를 표한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그때 어느 중국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난징의 10만명(난징에서 생존해 살아있던 사람의 숫자)의 목숨을 구한 진정 살아있는 부처입니다."
그러나 그는 독일로 돌아간뒤, 일본의 적국이었던 중국사람들을 구해낸 것으로 인해 게슈타포(당시 독일의 비밀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고 전후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나치당적이 문제가 되어 소련군과 영국군에 체포되었고 간신히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는 그야말로 한푼없는 알거지가 되었고 가난하게 살다가 1950년에 세상을 떠난다.
여담이지만, 이때 라베가 가난하게 살고있다는 말을듣고 1949년 난징시장이 직접 찾아와 중국정부, 그리고 난징시민이
자체적으로 모은돈 수천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현재 금액으론 약 2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때 중국은 중일전쟁 끝내고
국공내전이 한창이었던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정말로 자신의 밥 한끼 한끼를 아껴서 모금한 금액임이 분명하다.)
그는 아직도 난징의 살아있는 부처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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