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역사

[스크랩] 중국 역사에 길이 레전드, 전설의 매국노 석경당

왕풍뎅이 2012. 10. 18. 00:46


석경당石敬瑭, 892 ~ 942

이 그림은 삼재도회三才圖會라는 명나라 시대 백과사전에 있는 그림입니다.


이 사람은 매국노로 그야말로 레전설인데...
보통 매국노가 망할 나라를 더 빨리 망하게 한다던가 정도라면

석경당은 거의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수준이죠.




우선 그 유명한 당나라가 멸망한 뒤, 세력을 잡은 사람은 주전충이라는 인물이고, 이 주전충은 후량을 건국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던 이극용이라는 사람(사타돌궐 족 출신)이 머리에 종기가 나면서 죽고, 이존욱이라는 아들이 세력을 이어받아 주전충을 마구 격파하고 후당이라는 나라를 건국합니다.


이존욱은 지휘관으로서는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후량 상대로는 '단 한번도'(자치통감을 전에 본 기억으로 진적이 없습니다. 이존욱 쪽이 피해가 크면 후량은 더 큰 싸움들이 대부분 이었고) 진 적이 없습니다. 결국 주전충은 계속 패배만 당하다가 죽고 후량은 좀 더 버티다가 후당에 멸망하구요.



그 무렵 북방에서 거란족이 득세하여 요나라를 세웠고, 그 인물이 바로 야율아보기로
우리 역사와 인연은 이 사람이 발해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전부터 야율아보기는 중원으로 진출하려고 계속 시도는 했는데...이존욱에게 수 차례 막혀서 뜻을 못 이룹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난 이존욱은 정작 후량도 다 멸망하고, 황제 노릇을 하는데
싸움과 정치는 또 다른 일이라, 놀기만 하고 휘하 장수들의 불만을 사다가 반란이 일어나면서 자살,


그 대신 후당의 황제가 된 사람이 이사원인데 이 사람이 후당 명종입니다.
사타 돌궐족 출신이던 후당 명종은 본인이 학문이 깊진 못하고
(중국 황제가 궁전에서 자기 측근하고 튀르크 말로 이야기하다가 한족 신하들에게 핀잔 먹음)

또 성격도 거친 면이 있긴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나라를 좋게 경영했다는 평판을 듣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죽은 뒤.



석경당이라는 사람은 이존욱의 시대부터 싸운 무장이었고
명종 시대가 되면 가장 충실한 부하가 되어 여러 일을 합니다. 

또 청렴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평판도 남지를 않았구요.


명종은 이 석경당을 상당히 신뢰해 딸까지 주었습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명종의 후계자가 된건 이종후라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노왕(魯王) 이종가(李從珂)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켜서 이종후는 완전히 망해서


기병 50여명만 이끌고 간신히 도망을 치고, 마침 위주(魏州)를 지나다가 석경당을 만납니다.


석경당은 죽은 명종의 사위
그리고 이종후는 죽은 명종의 아들이니 자형 사이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종후가 좋아서 좀 도와주라고 하죠.


그런데 석경당은 사정을 듣자 한숨을 쉬면서 영 불안하게 굴더니, 위주자사 왕홍지(王弘贄)와 상의해보고 말을 올리겠다며 우선 그 자리를 떴습니다.

 "예전에도 도망친 황제들은 많았는데 병사 아니면 돈이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저 천자는 가진것이라곤 병사 50밖에 없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대략 이런 요지의 말을 왕홍지가 했죠. 그러자 결심을 내린 석경당은 이 말을 이종후의 심복인 궁전고사 사수영(沙守榮)과 황가 시위 분홍진(奔弘進)에게 전했습니다. 당연히 화가 난 분홍진은 석경당을 욕했습니다.


 "황제는 명종의 아들이고 자네는 명종의 사위인데, 황제가 천하에 믿는 사람이 자네밖에 없건만 배신을 하겠다는건가?"


옆에 있던 사수영도 화가 나서 칼을 뽑고 달려들고, 석경당의 부하가 나서서 맞아 싸우다가 둘 다 죽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분홍진은 너무 화가 나서 자결해버립니다. 


그러면 이종후는 어떻게 되었느냐, 석경당의 최측근에 유지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나중에 후한이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여하간 그 유지원에게 시켜서 남은 병사들 다 죽였고, 왕홍지에게 시켜서 이종후는 잡아다 가두고, 본인은 이종가에게 달려가서 항복합니다.



이종가는 이종후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렸구요. 죽은 명종은 석경당을 믿고 딸까지 주고 사위로 삼았는데 석경당은 명종의 자식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부터 이미 욕을 먹을만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이종가와 석경당이 대립했다는 겁니다. 이종가에게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석경당은 위험한 존재였는데, 마침 석경당의 부하들이 석경당에게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견제했습니다. 보통 만세는 황제에게나 하는 말이고.



그래서 이종가가 슬슬 석경당을 정리하려고 하자, 석경당도 눈치를 채고 군사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측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죠. 유지원은 우리가 지형을 이용해서 잘 싸우면 된다고 말했지만, 상유한(桑維翰)이라는 사람은 이곳이 거란과 가까우니, 요나라에 도움을 구해보면 어떤가,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석경당은 요태종 야율덕광에게 좀 도와 주십사, 하는 상주문을 보냅니다.
자기가 아들이 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석경당은 나이가 47세의 무장이었고 야율덕광은 이제 37세의 젊은이였습니다.
세상 천지에 10살 많은 아들이 나타나는 순간이었고


게다가 그렇게까지 해놓고도 마음에 걸리는지 이번에는 아예 땅까지 내준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땅이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중원으로 진출할수 있는 입구, 전진기지나 다름없는 지역이었고


이미 아버지 야율아보기 시대부터 중원 진출에 대해 욕심을 가져왔던 요나라와 야율덕광으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죠.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부하인 유지원이 땅까지 내줄 필요 있느냐 하고 따졌지만 석경당은 무시했고, 요태종 야율덕광은 좋다구나 싶어서 가을에 군사를 이끌고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이종가와 석경당은 싸우게 되는데 석경당이 한참 몰려 위급해졌는데,
가을이 되자 진짜로 요태종이 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 이종가 군대를 단숨에 때려부숩니다.


그리고 야율덕광은 "아들" 석경당을 중원의 황제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직접 책봉식을 거행해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란 군주가 중국 황제를 책봉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 책봉식에서 야율덕광이 직접 석경당에게 옷을 입혀주는데 거란옷이었습니다. 중원 황제가 굽실굽실하면서 거란 옷 입고 황제가 되는 순간이었는데




문제는 당연한 소리지만 외세인 거란을 끌어들이고 앞에 땅까지 내준 탓에

완전히 거란의 빵셔틀이 되어 계속 무리한 요구에 시달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부에선 살기 어려워서 반란도 일어나고, 

요나라 요구를 다 들어주면 중원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렇다고 들어주지 않으면 요나라가 마음대로 내려와서 공격할테고


그거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하다 사망합니다.


본인은 그게 끝이지만 그 뒤에 사람들이 요나라 압력을 벗어보겠다고 나서다가 


대패하고 끌려가고

요나라 군대가 중원에 들어와서 한동안 학살을 하다가 물러가고


이후에 후주라는 국가가 성립하면서 이에 대응하는데,


요나라 쪽에서는 또 북한이라는 꼭두각시 나라를 만들어서 한동안 이를 몰아내느라 계속 싸워야만 했고

(이 후주와 북한과의 싸움에서 활약한 사람이 송태조 조광윤입니다)


결정적으로 송나라가 건국이 된 다음에도 연운십육주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복을 못합니다.




당연히 송나라로서는 입구에 해당하는 부분에 앞에 요나라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굉장히 거북스러운 상황이죠. 다른 통일 왕조의 개국시와는 상황이 덕분에 많이 틀려졌습니다.


실제로 송태종이 979년 연운십육주 회복을 위해 전투를 벌였지만

요나라 지휘관 야율휴가에게 대패하는 고량하 전투의 패전 이후로 사실상 포기하는 상태가 되고



요나라가 연운십육주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통일 왕조가 아니라
이존욱 혼자서도 곧잘 막아내던 모습을 볼때


그야말로 석경당의 유산이 백여년을 넘게 내려오며
동북아 세력 형세에도 영향을 주는 형세가 되어버리죠.


당연한 소리지만, 그리고 특히 민족주의적 시각이 매우 높아진 근현대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매국노의 대명사로 떠올라


"너 이 놈 서방 제국주의 국가(혹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석경당, 장방창(이 사람은 나중에 금나라가 송나라에 대해서 세운 괴뢰국가의 군주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본인도 억울한 면은 있습니다) 같은 쉑이!" 


하고 욕을 퍼붓는 지경에 이르죠.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을 찾아보면 현종이 "석경당이 어떤 사람이었냐" 하고 묻자, 김수흥이 대답하기를


“거란에게 땅을 바치고 견양(犬羊)에게 신하 노릇을 하였으니 그 나머지는 볼 것도 없습니다.”


하고,



영조의 경우에는 석경당의 이야기를 보고 o_0;;; 완전히 이렇게 되서

 
"지금 석경당(石敬瑭) 이 거란(契丹)에게 〈자신을〉 아황제(兒皇帝)라고 일컬은 일을 보니, 놀랍고 통탄스러움을 금하지 못하겠다. 《강목(綱目)》의 이 편(編)은 강하지 않는 것이 가하겠다."


이러기도 합니다.
출처 :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글쓴이 : 다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