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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의 3대 악녀

왕풍뎅이 2013. 2. 10. 01:36

중국의 3대 악녀

1) 달기

달기는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첩으로 포사,서시,왕소군과 함께 고대중국의 전설적인 미녀.
하지만, 중국 역사에 나오는 미녀 중에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여성중에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사기에는 주왕은 원래 현군이였지만, 그녀를 맞이 한 후에 악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녀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한 충신은 자신의 아름다운 딸을 바쳤는데 달기는 그녀를 모함해서 죽이고 그녀를 요리로 만들어 아버지에게 주었다는 등골이 오싹한...
그녀는 왕에게 포락지형을 건의했는 데, 이것은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발이 미끄러져 불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타죽게 하는 것으로, 달기는 산 채로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고...
충신 비간이 주왕에게 충언하자 주왕은 그를 잔인하게 죽였는 데, 그것도 달기의 생각...
나중에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망하자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그리고 처형할 때 망나니들이 그녀의 미색에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장의 대장이 90살이 된 망나니로 처형하려 했으나 이 늙은 망나니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고...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 처형했다고...

2) 여태후

여태후는 한나라의 초대황제 고조(유방)이 죽자 고조가 사랑했던 애첩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였다고 역사에 나오는데... 황제의 여자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한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로 그렇기 때문에 여태후를 악녀라고 말하고 있지요.

여태후는 척부인을 몹시 미워했는데 이는 척부인이 고조의 사랑을 독차지 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자방을 비롯한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한 후에 고조는 여태후가 척부인의 아들을 해칠 수 없도록 믿을 수 있는 신하에게 그를 부탁하지만, 여태후는 그를 감금한 후에 마침내 척부인의 아들을 독살합니다.

이후에 척부인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죽이지도 않고...자신의 아들인 혜제에 척부인을 보여주자 혜제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인생을 술에 빠져서 살다가 죽었다는...

혜제가 술에 빠져 정치를 등한 시 하자 여태후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쫓아 내거나 죽인 후에 자신의 친척들을 대거 기용해서 권력을 장악합니다.

혜제가 죽자 이후 여러 황제를 옹립했는데, 이런 일화가 있읍니다. 황제를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황제의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 사실을 황제가 알자 그 황제마저 죽였다는...

이처럼 여러 황제를 마음대로 내세웠던 여태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고 이에 고조의 신하들은 여씨 세력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읍니다.

마침내 여태후가 죽자 고조의 신하들은 여씨들에 선전포고 했고 여씨들은 권력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고조의 신하들은 이들을 끝내 숙청해서 여태후의 친척들은 대다수가 숙청되었지요. 그 당시 여씨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태후가 죽자 여씨들은 분열하여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지요. 이어서 황제에 오른 문제는 여씨의 세력을 모두 숙청함으로 여씨들은 멸문을 당하고 맙니다.

3) 측천무후

측전무후는 자신과 대립했던 친자식을 죽인 것으로 악명이 더 높은데, 여태후가 자신을 반대했던 혜제를 죽이지 않은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악독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측천무후 역시 고종 시대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후궁들을 무참히 죽인 것으로 악명 높은데, 자신을 궁궐에 입궁시킨 황후마저 무참히 죽였다고...

마음에 드는 신하들하고 바람 핀 것으로도 악명 높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지금와서 그것을 악한 행동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여태후와 비교해서 여태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여태후가 고조와 혜제가 죽은 후에 권력을 잡은 것에 비해서 측천무후는 남편인 고종의 생존시 권력을 송두리째 빼았었다는 점도 당시로 보면 악처인 셈이지요.

남편의 권력을 빼았은 아내, 자식을 죽인 어머니...권력을 위해서라면 인륜조차...

반면에 여태후는 아들인 혜제의 권력을 빼았지 않았는데...

이런 일화가 있다.

여태후는 벽양후 심이기를 총애했는데(아마도 불륜관계인듯) 혜제가 노하여 벽양후를 죽이려 하자 부끄러워 하여 벽양후를 변호하지 않았다고...

비록 당시에도 권력을 휘둘렀지만 혜제가 여태후가 총애하는 신하를 옥에 가둔 것으로 보아서 혜제가 허수아비 황제는 아니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읍니다.

이에 반해서 측천무후는 악처이자 자식을 죽인 어머니이니 여태후보다 훨씬 더 악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태후는 비록 자신의 정적들은 무참히 죽였지만 반대로 자신이나 고조에게 충성을 바쳤던 신하들은 우대하였는데, 고조의 충신들을 숙청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훗날 여씨들이 멸문당했으니 여태후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잘 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여태후의 특이한 점은 고조의 후궁들 중 고조의 사랑을 받지 못한 후궁들을 우대했다는 점인데... 그들을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그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인정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출처 : 민속예능인 김삼
글쓴이 : 김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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