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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 신들과 전쟁을 벌이다

왕풍뎅이 2010. 2. 17. 11:39

영화, 신과의 전쟁을 벌이다
정통 기독교 신관 뒤집은 ‘아바타’에 교황청 ‘발끈’
‘매트릭스’ 신의 자리 없애고 ‘트로이’ 신의 목 날려
■ 조현기자의 <휴심정>
하니Only 조현 기자
» 아바타




지난 23일로 외화로선 최초로 국내 관객 1천만을 돌파한 <아바타>의 설정은 너무도 동양적이다. 아니 한국적이다. 아바타에서 만물을 주재하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여신 에이와다. 한민족이 창조의 신으로 믿고 있던 여신 마고와 닮았다. 또한 판도라별의 센터인 거대한 신목은 우리민족의 시원이 신성한 나무인 신단수(神壇樹)였던 것과도 닮았다. 자신들을 곰의 자손이라고 표방했을만큼 인간과 동물간의 경계를 두지않았던 것과도 유사하다.

너무도 한국적인 아바타의 설정

인류의 역사는 내종교와 네종교, 내민족과 이민족, 나와 적으로 갈려 끝없는 갈등과 폭력과 지배와 피지배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전직 해병대원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조금 전까지 원주민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 정글을 달리던 자신의 분신 아바타가 나인가, 이렇게 하반신을 쓰지못하는 자가 나인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동양에서 인간은 단지 꿈 속을 헤메는 우매한 자일 뿐이다. 나비족들은 제이크 설리를 ‘꿈꾸는 자’라고 부른다. 동양에선 잠 속의 꿈만이 꿈이 아니다. 일체가 꿈이다.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의 눈엔 세상이 파랗고, 빨간 안경을 쓴 사람의 눈에 세상은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세상이 제 마음의 투영인 때문이다. 낮엔 무의식적 고정관념을 투영해 판단분별하고 시비한다.


밤엔 무의식의 반영으로 꿈을 꾼다. 제이크 설리를 원주민마을에 보냈던 부대장은 제이크 설리에게 “네가 어느 편인지 잊어버렸느냐?”고 호통을 치지만, 제이크 설리는 마침내 편가르기하는 소아병를 벗어던지고 사랑과 상생과 공존의 대아를 선택한다. 그리고 장자의 대붕과 같은 새를 타고 비상한다. 그는 원주민의 구세주와 같은 ‘막토로’가 된다. 적이 내 편이 되고, 이방인이 구세주가 된 것이다. 원주민의 이름은 장자 호접몽의 주인공인 나비와 같은 나비족이다. 마침내 주인공은 판도라성의 나비족과 새와 동물과 식물과 하나가 되어 신의 종족인 지구인에 맞선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폭력적인 지구인에 맞선 것이다.

다빈치코드, 예수의 마지막 유혹 등도 ‘불편한 도전’  

» 영화 에선 판도라의 식물들이 신성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자연 숭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여성은 아직까지 사제로도 임명되지 못할만큼 남성적인데 가톨릭과 달리 <아바타>는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하느님 어머니를 그린 셈이고, 더구나 그 신은 인격적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이다. 인간 중심적인 정통 기독교의 신관과 달리 <아바타>에선 나무 씨앗 하나 동물 하나하나에 신성과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했다. 교황청으로선 불편할 법하다.

영상문화연구소 ‘케노시스’ 소장 정혁현 목사는 “기존질서에 도전함으로써 관심을 끌려는 대중문화 역시 욕망을 동력으로 삼은 후기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데올리기일 뿐”이라며 헐리우드 영화를 폄하했다.

하지만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아바타와 같은 공상영화조차 종교의 전통 가치에 부합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며 “인간 이외의 동식물을 인간을 위한 소비재로만 보지않고 한 생명으로 보는 문명비판적 관점을 통해 신학적 반성을 할 수도 있고, 인간중심의 신학적 후퇴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파괴에 대해 더 책임감을 갖게 되는 계기로 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청이 영화에 발끈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수와 막달라마리아의 혈통을 그린 <다빈치코드>나 교황청의 비리를 다룬 <천사와 악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를 직접적으로 그린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나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 대해서도 보수 기독교계가 큰 거부감을 드러냈다.

전통적 가치관과 신들의 영역 넘나들며 통렬한 반전

» 자신의 아바타를 보고 있는 제이크 설리.
하지만 그처럼 직접적인 종교 영화보다도 <아바타>나 <트로이>, <매트릭스> 같은 블록버스터들이야말로 보수 종교계엔 더 위협적이다.

상업적인 의도와 상관 없이 블럭버스터는 수천년동안 지속되어온 전통적 가치관과 신들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인류창조에 대한 전통적 종교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상영을 금지했던 <매트릭스>는 시스템 속에 갇혀 살아가는 인류의 자화상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시스템은 고정관념이나 전통 종교의 교리나 도그마로 대치될 수도 있다. 지상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야드>를 원작으로 2004년 개봉됐던 <트로이>는 서양철학의 근간이 된 그리스의 신을 죽이고 ‘인간’을 부활시켰다. 트로이성을 침략하고도 트로이신전의 거대한 아폴로신상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과 달리 “신상은 신이 아닌 상일 뿐”이라며 단칼에 목을 날려버리는 아킬리우스(브래드피트 분)는 신의 아들이기보다는 인간이다. 이제 한 지식인의 금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지닌 영화들이 신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신들에 도전하는 명대사들

<아바타>
‘말씀’보다 교감 앞세우며 “아이 씨 유” 

‘말씀’보다는 교감이 중시된다. 그리고 굳이 입을 뗄 때 꺼내는 말은 “아이 씨 유”다. 직역은 ‘나는 당신을 본다’지만, 그 의미는 ‘나는 당신 안에 있는 순수한 영혼, 즉 신성을 본다’는 것이다. 인간에게서만이 아니라 풀씨에서도, 들개에서도 그 신성을 본다. ‘강아지 똥’처럼 하찮게 보이던 지상의 모든 것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매트릭스>
인류 구원자 부인 “너 자신이 너를 구했다” 

» 기계인간들과 싸우는 니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모피어스가 자신을 인류의 구원자로 보지만 그는 “아니다”고 한다. 아님에도 그는 인류를 구한다.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위대성을 깨달은 자로서. 영화의 마지막에 시온으로 돌아온 니오에게 한 청년이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라고 외치자, 니오는 말한다. “너 자신이 너를 구했다”고. 거기에 신이 설 자리는 없다.

 

<트로이>
구원 손길 뿌리치고 “신들은 인간을 질투해

» 〈트로이〉. 사제와 잠자리하는 아킬리우스(브래드피트).
불세출의 전사 이킬리우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겁탈하려는 순간 칼에 목을 들이댄 그를 향해 태연하게 말한다. “신전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가르쳐주지. 신들은 인간들을 질투해. 신들은 죽으려야 죽을 수 없기 때문이지. 신들에겐 마지막 순간이라는게 없거든. 이 세상 모든 것들보다 인간들이 더 고귀한 것은 인간은 사라지기 때문이야. 넌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순 없어. 지금 이 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아.” 종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가자는 그 불멸을 가차 없이 내던지고, 오히려 인간의 무상함과, 그래서 더욱 고귀한 현실을 찬양하고 있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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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국학원청년단 사이버의병
글쓴이 : 운영자노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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