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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사전] 일본의 비불로 환생하다 " 백제 성왕 " (엣지 충만한 스압. 역사는 쉽게!재밌게!스피커 On)

왕풍뎅이 2010. 2. 16. 22:51

*문제시 댓글로 달아주세요

 

 

 

 

한국사전 2008.10.04

[ 일본의 비불(秘佛)로 환생하다 백제 성왕 ]

 

 

 

 

  

 

 

 

 

왕의 목을 겨눈 날카로운 칼날

 

 

" 과인은 매양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참고 살아왔지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

 

 

 

  

 

 

신라인들은 그의 머리를 북청 계단에 묻고 밟고 다녔다

 

 

 

 

그러나 성왕은 되살아났다

(성왕 부활) 

 

 

 

 

 


바다 건너 일본에서 성왕은 세상을 구원하는 비불로 되살아났다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
그 중심에 선광사라는 절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선광사는 일본 전역에서 찾아오는 참배객들의 행렬로 들썩였다

 

 

 

 

 

 

 

일본인들에게 선광사는 살아 생전 꼭 한 번은 참배 해야하는 곳으로 통한다

 

 

 

 

 

 

 

 


선광사 본당에 1400년 된 일본 최초 불상이 모셔져있다

 

 

 

 


선광사 비불은 평상시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참배객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것은
비불이 안치된 본당 지하의 밀실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서다

 

참배객들은 빛 한 줌 없는 어둠속에서 밀실 자물쇠를 만지고 나온다

 

 

 

 

 

 

 


비불(秘佛)이란 본래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불상이다

 

 

 

 

 

 

 

 

 

 

비불이 가장 최근에 공개된 지난 2003년
이 순간을 보기 위해 700만명이 모여들었다

 

 

 


굳게 닫혔던 나무함이 열리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 선광사 비불은

아미타여래 삼존불

 

 

 

 

 

 

양 옆에 보살을 거느리고 서있는 이 아미타여래불이

1470 여 년동안 선광사에서 전해온 것으로 알려진 일본 최초의 불상이다

 

 

 

 

선광사는 대대로 천황의 친족이 주지를 맡는것이 전통이다

 

 

 

 

 

 

그들은 선광사의 한 방으로 안내했다

불화에는 일본 최초의 불상인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시게 된 내력이 그려져있다

 

 

 

 

 

 


환생설로 시작하는 선광사 여래연기 불화에는 왕관을 쓴 백제 성왕모습이 있다
성왕이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뒤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일본에 전하는 과정을 한편의 영상처럼 상세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선광사의 아미타여래는 정말로 백제 성왕이 보낸 것일까?

 

 

일본의 불교왕조 역사서인 부상략기 내용이다

 

 


성왕은 왜 불상을 일본으로 보냈던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성왕이 일본에 집중적으로 불교 문명을 전파했던 시기가

사비로 수도를 옮긴 직후라는 점이다

 

 

 

성왕은 백제의 두번째 수도 웅진에서 나고 자라 왕위에 올랐다
 
백제 첫 수도 한성은 457년 고구려 장수왕 군대의 침공으로 함락 됐다
개로왕은 고구려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채 쫓기듯 천도한 곳이 웅진이다
그러나 연이여 암살로 얼룩진 왕들의 죽음

 

백제 왕들에게 웅진은 왕실의 권위가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의 땅이자 절치부심의 땅이었다

성왕은 이런 웅진시대의 다섯번 째 왕이다

 


성왕이 아버지인 무령왕의 무덤 앞에서 되새겼던 백제의 꿈은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국서를 보내 당당하게 선언했던 열 글자에 잘 드러나있다

 

 

  

 

실제로 아버지 무령왕의 일생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을 되찾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었다

고구려와 싸워서 이길 정도로 백제의 힘을 키웠지만

고터 회복의 꿈은 이루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그랬듯 성왕에게 고구려와의 전쟁은 숙명이었다

 

 

 

 

538년

 

성왕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왜 사비였을까?

사비와 웅진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산과 강으로 둘러쌓인 공주는 전형적인 수비형 도시이다

 

 

 
그러나 택리지에 공주는 한 나라의 수도로 삼기에 작고 협소한 것으로 나와있다

 

 

 

 

 

반면

사비는 탁 트인 평야 지대이다

 

 

 

 


사비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데 유리한 공격형 도시이다

 


사비를 끼고 흐르는 백마강은 사비 천도의 목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택리지를 보면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백마강이 서해 바닷길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왕이 사비로 천도 한 목표는 분명했다

 

 

 

 

 

 

성왕이 건설한 사비성은 바둑판식으로 설계된 북측형 도시였다

 

 

 

 

 

사비천도 직후 성왕은 그의 웅대한 꿈을 밝힌다

 

 

 

 

[* 드라마 "천년지애" 에서 -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 - 라는 명대사(?)를 남긴 성유리의 역할은 의자왕의 딸 이었긔

백제는 성왕 이후 의자왕이 신라에 항복 할 때 까지 국호가 남부여 였닭! ]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는 모두 부여에서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서로가 동명의 권위를 계승한 적자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475년에 고구려 공격으로 백제의 한성을 빼앗기고 자존심과 정통성에 훼손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것은 부여 계승 의식을 천명하고

나아가서 북진을 선언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웅진시대 성왕은 고구려군의 계속되는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사비로 수도를 옮긴 뒤 전투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비천도 2년 째 되던 해 처음으로 성왕은 고구려를 공격한다

 

 


 

하지만 고구려는 여전히 막강한 상대였다

(....완전히 망해뜸..)

 

악몽과도 같았던 우산성 전투의 참패

성왕은 이때부터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전략 수립에 들어간다

이 때 성왕이 주목한 곳이 바다 건너 일본이다

 

 

 

 

 

일본의 나라 현은 아스카문명의 산실이다
아스카 공원의 넓은 구릉지대에 75톤이 넘는 바윗돌로 만든 이시부타이 고분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돌무덤이다

 

 

 

 

 

 

 

그런데 관이 안장된 무덤 안을 보면

전형적인 백제 양식인 굴식돌방형 무덤이다

일본학계에서는 이 거대한 무덤의 주인을

6세기 사실상 일본을 지배한 소가노 우마꼬라는 귀족으로 보고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최고 실력자는 무슨 이유로 백제 무덤에 묻힌 것일까?

 

 

 

 


소가노 우마꼬가 일본의 막강한 실력자로

성장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왕의 지원이 있었다

 

 

 

 

 


성왕이 일본에 처음으로 아미타여래상을 보냈을 때

왜 조정은 불교 수용문제를 둘러싼 설전이 벌어졌다


반대파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 천황은

소가노의 주장대로 불상을 받아들인다


소가노 우마꼬는 성왕이 보낸 아미타여래불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절로 삼았다

 

 

 

 

 

 

성왕이 일본에 파견한 불교 사절단은

 다양한 기술을 가진 백제 전문가 집단이었다

 

 

 

 

 

오경박사와 역박사등을 일본에 보내 일정한 주기로 교대 시켰는데

 성왕의 사절단이 머문 곳이 소가노의 저택이다

 

 

 

 

 

 

 

실제로 소가노의 권력은 일본 천황을 위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천황은 산돼지처럼 소가노의 목을 자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천황을 제거한 소가노는 일본 최초의 여제인 스이코 천황을 옹립한다

 

 

 

 

 

 

 

소가노를 통해 수립한 왜의 친 백제정권

그것은 20여년에 걸친 성왕이 외교전략이 맺은 결실이었다

 

성왕은 왜를 군사 원조 기지로 만든것이다

 

 

 

 

551년

 

백제는 혼자가 아니다

신라, 가야, 그리고 왜의 군사들이 백제 연합군의 깃발 아래 합류했다

 

 

 

 

격전이 벌어진 곳은 풍납토성 일대의 한강유역

고구려에 짓밟히기 전까지 이 곳은

 백제 시조인 온조가 나라를 세우고 터전을 닦았던 한성이었다

 

 

성왕이 지휘하는 백제 연합군의 선제 공격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치밀하게 준비한 성왕의 연합군 앞에 고구려군은 맥없이 무너져 갔다

 

 

성왕의 승리였다

 

개로왕 떄 한강을 빼앗기고 76년이 흘렀다

성왕은 마침내 고구려에 빼앗겼던 백제의 옛 수도를 되찾았다

 

하지만 성왕은 한강 탈환에서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성왕이 북진해 고구려를 격파한 곳은 평양 이었다

 

 

 

고구려 왕은 궁궐 담장을 넘어 도망갔다

(너.... 선조의 조상인가....)

성왕이 백제 연합군을 이끌고 평양의 고구려 궁까지 점령한 것이다

 

 

 

한강을 넘어 평양 공격

오랜 세월 절치부심 북진을 준비한 성왕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양 공격에 함께한 연합군은 일본 군대에서 파견한 왜군이었다

성왕이 사비천도 후 일본에 아미타 여래불을 보내며 불교문명 전파에 쏟은 노력은 이 순간을 위한 것 이었다 

 

 

 

하.지.만. 벅찬 기쁨도 잠시

백제는 2년 만에 다시 한강 유역을 빼앗긴다

(한 번의 기쁨과 함께 날이 선 듯한 강한 폭풍눙물크리ㅠㅠ)

 

그런데 성왕의 꿈을 깨버린 것은 고구려가 아니었다

 

 

  

 

진흥왕은 성왕의 백제군이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를 장악한 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북한산 비봉에 올랐다

그 기념으로 세운 것이 북한산 순수비 이다

 

 

 

신라가 백제 성왕과 맺은 동맹을 깨고 한강 하류지역을 기습적으로 차지한 것은 553년

성왕이 한강을 넘어 북진 할 때부터 그 징조가 나타났다

 

"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계속 공격 합시다 "

 

"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 어찌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겠소 "

 

 

 

 

 

진흥왕은 백제 연합군에서 빠졌다

그리고 진흥왕은 밀사를 파견에 고구려에 그 사실을 알린다

 

 

 

 

두 나라 모두 백제가 모두 팽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성왕의 백제군이 점령한 한강 하류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판도를 가르는 전략적 요지였다

 

성왕의 막강한 힘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고구려는 동맹을 선언한다

 

 

 

 

참기 힘든 치욕이었다

그러나 성왕은 분노를 다스리며

백제의 오랜 꿈을 물거품으로 만든 신라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먼저 성왕은 딸을 진흥왕에게 시집보냈다

그것은 폭풍 직전의 고요와도 같았다

 

그런다음 에 국서를 보냈다

군사파병 지원을 요구하는 국서였다

 

 

 

 

성왕은 554년 1월 중으로 군사를 보내달라고 강조했다

 

 

 

 

 

554년 7월

 

성왕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왜군까지 합류한 3만 대군을 지휘할 연합군 사령관은 성왕의 아들이 맡았다

 

 

 

 

 

그런데 백제 연합군이 출병한 곳은 한강이 아닌 관산성이다

 

 

왜 관산성을 선택한 걸까?

 

관산성이 자리한 옥천은 지금도 교통의 요지다

당시 관산성은 경주로 가는 관문이었다

 

 

성왕의 최종 공격목표가 신라의 심장이었다는 뜻이다

 

 

 

 

 

 

 

 

 

 

백제 연합군의 관산성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3만 대군 앞에 신라군은 무너졌다

백제는 순식간에 관산성 일대를 장악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뒤

 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성왕은 왕궁만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왕은 이렇게 적극적이어야 한다!! 선조 보고 있숴여????)

 

 

 

 

 

 

그 무렵 신라의 전 군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성왕이 직접 출정한다는 첩보에 신라가 나라 안의 군사를 동원한 것이다

신라의 첩자에게 성왕의 움직임은 노출되어 있었다

 

 

 

성왕이 관산성으로 출발한 시각

신라군도 관산성 길목으로 모여들었다

 

매복이었다

 

 

 

 

일본 서기가 전하는 백제 성왕의 최후는 이렇다

 

" 삼가 백제 왕의 목을 베기를 청합니다

우리 신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는 것이 법입니다 " 

 

" 과인은 매양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참고 살아왔지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

 

 

 

 

손에 잡힐 것 같았던 고터 회복의 꿈은

한때 동맹국이었던 신라의 칼날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성왕은 나라 사람들이 존경하고 천문지리에 신묘하게 통달했다고 할 정도로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한 성왕을 죽이기는 했지만

성왕의 영적인 힘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북청 계단 밑에 두고 밟고 다니며

성왕의 영적인 힘의 발산을 막으려고 한

 

신라인들의 성왕을 향한 두려움을 반증한다

 

 

백제는 성왕의 남은 유골을 수습해 능산리 고분에 모셨다

 

성왕의 전사 소식에 일본열도는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이 성왕의 최후는 아니었다

 

 

 

 

 

특별한 비불을 모시고 있는 법륭사 몽전

일년에 단 두차례만 개방되는 성역이다 

관광객들이 몽전의 창살문으로 기웃거리지만 불상은 보이지 않는다

 

 

 

 

 

몽전의 비불이 공개 되는 것은 봄 가을로 각각 한 달 씩

몽전의 비불은 구세관음상이다

세상을 구원한다는 뜻이 담긴 불상이다

 

 

 

 

 

녹나무를 깎아서 조각한 뒤 금박을 입혀서 만든 구세관음의 키는 187cm

사람의 신체와 같은 크기로 만든 등신상이다

 

 

 

 

 

 

 

 

왕관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보관아래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

다른 부처 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상하게 구세관음상은 부처가 아닌 사람 모습에 가깝다

 

 

  

 

 

법륭사의 600년 된 기록인 성예초

 

 

 

 

 

놀랍게도 구세관음상은 백제 위덕왕이 성왕을 그리며 만든 불상이었다

위덕왕은 구세관음상에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 성왕의 모습을 담았다

 

 

 

 

그렇다면 성왕은 우리 고대사 인물 가운데 상상이 아닌

고증을 통해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왕이다

구세관음상을 바탕으로 1500여년 전 성왕의 살아 생전 숨결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178.8cm 장신의 키에 살아 생전부터 성군이라는 뜻의 성왕으로 불렸던 후덕한 인상

 

백제 왕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관음상으로

1500여년의 시간을 이어온 존재

 

 

 

 

 

 

 

백제사의 상처와 굴욕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백제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성왕은 바다건너 왜를 상대로 치밀한 문명 외교를 펼쳤다

 

이러한 성왕의 일생은

한 사람의 꿈이 결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오타나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사진이나 음악이 제대로 안나오면 말씀 해주세요

 

 

 

+ 이번 편은 너무 사진을 조잡스럽게 해놨네요 -

올리면서도 게시물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아서 고민 했지만,

고칠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냥 올립니다

다음 편은 수위를 적당히 조절해서 가겠습니다

 

 

+ 전 편 들은 각각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1부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769 

세종대왕 2부 " 소리가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822

광해군 "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973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백제를 멸하리라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2180
 

 

 

+ 다음편은고구려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 편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거랑 그 다음 편으로 올라올 공민왕과 노국공주편이  재밌었초ㅑ!!!!!!!)

 

 

그리고,

게시물에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늘 고맙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고 있어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enough. wh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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