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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전 2008.05.17 [ "고구려 여인 우씨" 두 번 왕후가 되다 ]
서기 197년
그는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배후로 지목했다
우씨 왕후는 왕을 능가하는 고구려의 지배자였다
중국 길림성 집안 고구려의 무덤 만2천 여 기가 남아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군이다
왕릉급 무덤이 즐비한 계곡의 끝자락
자연능선을 따라 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성벽이 약 7km
고구려인들은 외부인들의 침략 위험이 높은 남옹문에 "ㄷ"자 형의 방어구조를 구축했다
환도산성은 해발 600 고지대에 구축한 고구려 기술과 전략의 집약체였다
삼국사기는 이 성에 얽힌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녀는 우씨
고구려 10대 왕인 산상왕의 부인 이었다
234년 9월
왕후의 마지막 소원은 7년전 죽은 남편 산상왕 곁에 묻히는 것이었다
우씨는 유언대로 남편 곁에 묻혔다
왕후의 장례를 치룬 후 고구려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분을 참을 수 없어 마침내 우씨와 다투었다 낯이 아무리 두꺼워도 부끄러워 차마 백성들을 대할 수가 없구나 "
(동국통감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거 꼭 기억하시긔! 중요하닭!)
그것은 사상 최대의 스캔들 이었다 우씨는 한 때 고국천왕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차기왕인 산상왕과 재혼했다
우씨는 두 번 왕후가 된 역사상 유일한 여성이었다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이자 가장 오랜 수도였던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현
서기 180년
그녀는 연나라는 부족의 딸이었다
(드라마 "주몽" 의 한혜진이 맡았던 주몽의 아내이자 온조와 비류의 어머니 소서노는 계루부 출신이었지예~ )
고국천왕은 (캐)분노했다 연나부의 힘은 왕실인 계루부를 능가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연나부가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직접 군사를 몰고 가 이들을 제압했다
그가 을파소였다
농부출신으로 백성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을파소는 대대적인 민생 안정책을 출시했다
춘궁기에 관의 곡식을 빌려주고 겨울에 갚게 하는 우리민족 최초의 사회보장제도 진대법이다 이는 가난한 백성들이 귀족들의 노비가 되는 것을 막아 그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사실상 계루부 단독정권을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귀족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왕권강화를 추진하던 고국천왕이 사망했다 국가적 위기였다
왕후는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붙였다
왕이 죽던 그날 밤 왕후는 몰래 성을 나와 귀족들의 거주지로 갔다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 왕께서는 아들이 없으니 당신이 마땅히 그 뒤를 이어야 합니다 "
왕후는 남자에게 왕위를 제위했다
그의 이름은 발기 ( 이름이.. 좀..... 웃지뫄!!! 이 싸람들 웃지뫄여!!! 거기 어금니 꽉 깨물고 있어요!!) 고국천왕의 동생이자 차기 왕위 계승자였다
우씨는 왕의 죽음을 숨긴 채 새로운 정권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 하늘의 운수는 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 가볍게 논할 수 없습니다 "
어차피 왕위는 자신의 것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치명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 더구나 부인으로써 밤에 다니는 것을 어찌 예의라 하겠습니까? "
그것은 치욕이었다 왕후는 상처만 안고 돌아서야 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만약 발기가 왕위 계승을 운운하는 그녀의 말을 문제 삼는다면 반역자로 몰릴 수도 있었다
그날 밤 왕후는 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갔다 (..)
" 발기가 큰 동생으로써 마땅히 뒤를 이어야 되겠으나 그는 나에게 딴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오만하고 무례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주버님께 온 것 입니다 "
아주버님, 그는 또 한 명의 시동생 이었다 왕에게는 세명의 동생이 있었다 왕위 계승권자 발기가 첫째 동생이었고 왕후가 두번째로 찾아간 연우는 둘째 동생이었다
이번엔 그녀도 승부수를 던졌다
" 폐하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없습니다 "
고국천왕의 죽음을 알린 것이다
연우의 태도는 발기와는 달랐다 극진한 예를 갖추고 직접 고기를 썰어 형수를 대접했다
그것은 파격이었다
고구려 사회에서 이런 손님 접대는 하인들의 몫 이었다 (아래 무용총 사진에 작게 그려진 사람이 하인, 신분의 차이를 사람 크기로 나타낸 신식 그림임 ㄲㄲ)
우씨와의 협상에 응하겠다는 적극적 의사의 표현이었다
개인적이면서도 또 역사적인 동맹의 시작이었다
우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우와의 거래를 성사 시켰다 그 날 밤 사실상 그들은 청혼을 한 셈이다 오늘 날의 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패륜적인 행동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 할 수 있었을까?
이 답은 고구려의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구려 사람들은 제천행사인 동맹이 열리는 매 해 10월 이면 압록강변에서 제사를 지냈다
고구려 여신은 누구였을까?
중국의 사서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삼국 사기는 하백의 딸을 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녀는 유화 건국시조인 주몽의 어머니였다 고구려는 유화 부인을 건국시조로 추앙했다
여성이 수호신인 나라
고구려의 여성들은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제천행사이자 국가 축제이기도 했던 동맹이 열리면 남녀가 함께 어울렸다
남녀 관계도 개방적이었다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교제했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했다 때론 여성이 관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거슨 본적이 없는 남녀평등! 조선 성리학자들 보고 이쒀여??????)
결혼 풍습도 간소하고 실용적이었다
결혼 이후에도 고구려의 여성들은 특별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이른바 형사취수제다
형사취수제는 고구려의 원류인 부여시대부터 내려오는 고대의 풍습이었다
한나라와 치열히 싸워 건국한 고구려 많은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죽었고 미망인도 적지 않았다
그날 밤 왕후 우씨는 고구려 사회가 여성에게 허용한 보호 장치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연우는 왕후 우씨가 형사취수제를 이용해 새롭게 찾은 국정 파트너였다 그런데 그를 맞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있었다
궁에 돌아갈 시간 그녀에게 적은 많고 시간은 짧았다
두 사람의 연합은 이날 밤 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날 새벽 비로소 우씨는 왕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고국천왕이 임종 전 연우를 차기 왕으로 지명했다고 공포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발기는 분노했다
" 형이 죽으면 아우에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이 예의 이거늘 니가 차례를 어기고 왕위를 찬탈하는 것은 큰 죄악이니 빨리 나오너라! "
찬탈 그것은 쿠데타 였다 발기는 사흘동안 성을 포위하고 왕위 계승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연우와 우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론마저 발기를 따르지 않았다
발기는 고구려를 떠나 망명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중국 요녕성 요양 당시 요양은 한나라 요동군의 치소로 양평이라 불리고 있었다 당시 공손씨의 수장인 하급 군인 출신으로 요동 태수까지 오른 공손도라는 인물이 있었다 공손도는 한나라가 망해 위, 촉, 오 삼국 으로 나뉘자 요양에 자리를 잡고 사실상 독립정권을 세웠다
당시 이들은 요동지역을 두고 고구려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발기는 고구려의 적 공손씨에게 망명한 것이다
" 내 동생 연우가 형수 우씨와 공모하여 왕위에 올라 천륜의 대를 어겼습니다 "
그는 공손도의 힘으로 왕위를 되찾으려 했다 공손도에게는 숙적 고구려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그의 군대는 고구려의 왕자를 앞세우고 고구려로 진격해갔다
발기는 당시 그의 반란에 동조한 비류부의 3만 군대를 끌어 모았다 마침내 발기는 공손도의 군대와 비류부의 연합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다
결과는 참패였다 (깝치다 루저크리...)
왕위에 눈이 멀어 조국에 칼을 겨눴던 고구려의 왕자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마침내 우씨는 승리했다 (To the victory~!!)
우씨의 도움으로 왕이 된 산상왕은 다른 부인을 얻지 않고 형수 우씨와 결혼했다
그렇게 우씨는 다시 고구려의 왕후가 되었다
이 후 고구려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즉위 다음해에 산상왕은 환도산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환도산성의 중심부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건물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왕궁이었다
산상왕은 즉위 13년 만에 이 곳 환도산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국내성을 떠나 이곳으로 궁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궁성이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서는 병사들의 거주지가 확인 되었다 군대가 주둔했던 것이다 막사 바로 앞에는 요망대가 있다 일종의 망루인 이 곳에서는 국내성을 비롯한 집안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왕후 우씨는 산상왕과 함께 환도산에 산성을 쌓았다 그리고 8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대지에 궁궐과 사당을 갖춘 거대한 왕성을 지었다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왕성 앞에 망루를 세우고 군사를 배치했다
이 후 왕후는 왕실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왕후의 부족 연나부는 우씨가 사망한 후 100년이 지나도록 왕후를 배출했다
이 후 고구려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
왕후 우씨는 초기 고구려의 역동적 역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쳐간 당당한 고구려의 여성이었다
조선시대의 역사서인 동서강목에서 "간악하고 음탕하며 부끄럼 없기가 고금 천하에 이 뿐이다 " 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윤리에 근거한 평가일 뿐이다 고구려는 개방 된 나라였고 왕후의 행동은 당대의 관습과 규범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왕을 능가하는 왕후로 반세기동안 고구려를 이끌었던 철의 여인이었다
+ 오타나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사진이나 음악이 제대로 안나오면 말씀 해주세요
+ 전 편 들은 각각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1부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769 세종대왕 2부 " 소리가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822 광해군 "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973
+ 다음 편은 " 신화가 된 사랑, 공민왕과 노국공주 " 편 입니다
+ 역사에 흥미 없는 분들도 쉽고 재밌게 보셨으면 싶어서 시작 했는데, 이상하게 점점 재미 없어지는 듯한 기분이... 원래 다음 편 하고 몇 편 더 하려고 했는데 재미 없으면 다음 까지만 하고 그만 할까요..☞☜ 영조, 정조, 천추태후, 소현세자빈 강씨 외 몇 명 정도로 잡고 있는데..
그리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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