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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사전] 고려여걸 " 천추태후 " ( 춘추태후 음탕한 여자 아뉘야! 늘 그렇듯 스압多 스피커on )

왕풍뎅이 2010. 2. 16. 22:52

*문제시 댓글로 달아주세요

 

 

 

 

 

 

한국사전 2008. 10. 18
[ 고려 여걸 " 천추태후 " ]

 

 

 

 

 

 

 

 

 

 

 

 

 

 


고려 7대왕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
그녀는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했다



 

 

역사는 천추태후를

욕망에 눈 먼 음탕한 여자로 기록하고 있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했던 동안 고려는 전통이 부활하고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는 등 안정된 시기를 구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천추태후


그녀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녀는 왜 역사를 외면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일본의 교토국립박물관
이 곳에 고려 초기의 귀중한 문화재 한 점이 남아있다
고려 말 일본으로 건너간 지금은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대보적경 변상도

 

 

 


고려시대 왕실에서는 불경을 옮겨적는 사경을 자주 행했는데
변상도는 사경 첫머리에 불경의 그림을 압축해 그린 그림을 말한다

 

1006년에 그려진 대보적경 변상도는

고려시대 사경변상도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세 보살이 꽃을 푸리며 찬미 공양하는 모습이 은은한 자태로 그려져있다

 

 

 


 

 

대보적경은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을 하나로 묶어 정리한 것으로

주로 왕실과 백성의 안위를 빌고 자신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 9미터에 달하는 대보적경의 끝 부분에는 이것을 옮겨쓴 이의 발문이 남아있다

 

 

 

 

 

 

사경을 한 왕태후 황보씨와 김치양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대보적경 변상도가 완성된 1006년의 고려사기록을 찾아보았다

대보적경을 사경한 왕태후 황보씨는

바로 고려 7대왕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
헌애왕태후 황보씨였다

 

 

 

 


그렇다면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무엇을 위해 대보적경을 사경했던 것일까?
그리고 둘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

 


천추태후
그녀는 고려 5대 왕 경종의 비 헌애왕후 황보씨였다
경종은 이미 2명의 비를 두고 있었다
헌애왕후 황보씨는 경종의 세번째 비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종은 왕건의 손자
헌애왕후 황보씨 자매 또한 왕건의 손녀라는 사실이다
자매는 당시 왕실의 풍습에 따라 외가의 성인 황보씨를 따르고 있었다


이들의 혼인은 태조 왕후의 손자녀 지간
사촌간에 이루어진 근친혼 이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고려 8대왕 현종때까지 왕들은 거의 근친혼을 했었
태조왕건의 넷째 아들이자 고려 4대왕인 광종은 그의 누이를 첫째 비로 맞았다


고려시대 근친혼은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이었다

 

 

 


개성왕씨의 족보를 보면 고려 왕들의 혼인에 관한

 또다른 중요한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태조 왕건부터 8대왕 현종까지

왕의 혼인은 특정 가문들과 이루어졌다

 

 

 


황주황보씨와 충주유씨

 


이들 두 가문이 대표적이었
특히 천추태후의 외가인 황주 황보씨는 황해도 황주에 기반을 둔 호족 세력으로

 왕후를 네명이나 배출하며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왕건의 손녀이자 쟁쟁한 지방 호족세력의 외손으로 경종의 비가 된 천추태후

그녀는 경종의 다섯 왕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아들을 낳는다

 

 

 

 



 

 

왕후에서 왕태후로 그녀의 운명이 달라지는 듯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찾아온다

 

 

 

 

 

급작스러운 경종의 죽음

천추태후가 아들을 낳은지 불과 1년만에 경종이 세상을 뜬 것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겨우 18살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천추태후의 충격은 컸다
그러나 슬픔을 추스리기도 전에 천추태후는 또 다른 문제와 마주해야 했다

누가 경종의 뒤를 이을 것인가?
경종의 후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왕위 계승자를 정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성종

 


바로 천추태후의 오빠였다

 

 


성종이 즉위 한 후 천추태후의 아들은

 궁궐에 남아 성종의 손에 자라게 됐다
남편을 잃은데 이어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천추태후

이때 그녀의 곁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천추태후의 외척이었다

 

 

 

 

 


둘이 사통한다는 소문은 곧 성종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성종은 유학적 성향이 강했던 왕이었다
그는 유학자를 스승이자 벗으로 뒀을 정도로 유학에 대한관심이 깊었다
성종에게 여동생의 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륜한 것이었다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왕후에게도 정을 통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작은 아버지 왕욱이었다

 


 



 


성종에게서 유교식 수절을 강요받았던 두 자매

헌정 왕후는 결국 죽음을 맞았고

 천추태후는 간통한 불륜한 여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천추태후의 애인인 김치양또한 패륜아로 기록되었다

 

 

 

 

남편을 잃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불륜한 여자의 대명사가 된 천추태후


그렇다면 당시 고려사회에서 천추태후의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일까?

 

 

 

-

 

 


천년 전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후 기록한 고려도경


고려의 건국역사부터 고려 왕실의 계보,
개경의 일상생활에 이르기 까지 당대 고려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부분이다

 

 


 

천년 전 송나라 사신이 크게 놀랐을 만큼

고려의 문화는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개방적인 성 풍속은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였는지는 족보를 통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1333년 고려 충숙왕때 작성된 여주 이씨 세보
그런데 뜻밖의 자리에서 여성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여성들은 수절을 강요받지 않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의 비

 수비 권씨는 이미 한번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고 다시 충숙왕의 비가 되었다고 한다
왕비도 재혼이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와는 달리 여성의 지위가 보장되고

여성의 성이 억압당하지 않았던 고려시대

그러나 천추태후만은 끝내 불륜한 왕후로 기록되고 있다

 

 

고려사는 조선초기 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역사서이다
유교를 최고 이념으로 여겼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헌애왕후의 행동은 결코 용납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헌애왕후에 대한 비난은 불륜에서 그치지 않고,
고려사는 헌애왕후를 권력에 눈이 먼 탐욕스런 여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진정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것일까?

 

 

 

-

 

 


잊혀진 존재가 되는 듯 하던 천추태후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성종이 재위한 지 16년 되던해 서른여덟의 나이로 성종이 세상을 뜬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은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목종

16년 전 성종에게 왕위를 양보해야했던 천추태후의 아들이었다

 


 

 

 

 

권력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천추태후

 

 



 


 

그녀는 섭정을 시작하자마 가장 먼저

귀양중이던 김치양궁궐로 불러들인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권세는 화려했다
궁궐은 호화로웠고 조정의 모든 권한은 그들의 손에 있었

 

 

 

 

 

 


김치양이 휘두르는 권력은

목종도 어찌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천추 태후는 왜 김치양을 불러들여 이렇게 막대한 권력을 허락한 것일까?

 

 


고려사에 따르면 김치양은 황해도 동주출신이다

 


 

패서지역의 호족지역들은 광종 후반기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과정에서

 대부분 숙청되고 중앙정치에서 소외 되어 있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근거지였던 황주를 비롯한 패서지역 출신들을 모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자 했다

 

 

 

 

 
김치양을 중심으로 한 패서 호족세력의

 결집에 기존 중앙관료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천추태후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이들
충신과 이로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뜻하는 것일까?

 

 

 

-

 


고려 6대왕 성종
그는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아

유교식 정치체제로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는 유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천추태후는 유학자들과 다른 노선을 지향했다

 

 

 

 

 

성종 대 유학자들이 추구했던 중국식 유교정치체제는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지향했던 고려의 위상을

스스로 제후국으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성종은 개국 이래 사용하던

'조서' 라는 용어를 '교서' 라고 바꾸도록 했다
조서는 황제국에서 쓰이는 말이므로 고려에서는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국을 지향했던 고려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 고려가 황제국을 지향했다는 것은

고려 궁궐의 형태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궁궐문이 3개 였던 것에 반해

고려시대 궁궐에는 총 5개의 문이 있었다

 



 

 

 

건국 이래 고려의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던

팔관회

 

 

 

 


원래 불교 의식의 하나였던 팔관회는

태조 왕건때 호국의 뜻을 새기고 복을 비는 국가 행사로 발전했다
고려인의 정신과 전통문화가 결합된 민족 통합의 장
그것이 바로 팔관회였다

 


그러나 성종은 고려의 전통인 팔관회와 연등회 등을 모두 폐지했다

유교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려의 엑스맨...)

 

 

 


이는 중국식 유교 정치이념 아래 자칫 잃을 뻔 했던

고려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 이었다


더구나 당시 고려 백성들은

성종의 급격한 중국화 정책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천추태후는 또한 대 고구려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태조 왕건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


그것은 서경중시정책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평양에 해당하는 고려의 서경

태조 왕건이 북진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중심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서경을 제 2의 수도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여황제 측천무후가

호경을 중심으로 주나라를 통일 한 것처럼

서경을 강화해 고려를 일으키겠다는 천추태후의 의지였다


천추태후는 안으로 고구려 영토회복의 꿈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급변하는 동북아 국제 정세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당시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을 넘보는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는 결국 거란 침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중국 대륙을 놓고 송과 대립하고 있던 거란은

고려를 먼저 공격해 송과의 관계를 끊어놓은 후

송을 치겠다는 계획이었다
고려가 송에 군사를 지원할까 염려했기때문이다

 


결국 성종의 친송일변도 외교정책이 거란의 침입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천추태후의 섭정기간 동안 고려는 단 한 차례도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


 

 

 

 

 

천추태후는 신흥세력인 거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고려 북방의 안정을 꾀하는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

 

한편 고려는 거란의 1차 침입 이후 외교관계를 단절했던

 송과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명분이 아닌 고려의 안정이라는 국익을 가장 우선시 했던 천추태후
그녀는 탁월한 국제감각으로 고려를 지켜낸 여성 정치가였다

 

 

 

-


 

유교를 바탕으로 고려의 체제를 바꾸고자 했던 유학자들
이들은 천추태후의 노선에 반기를 들며 결집해가고 있었다


유학자들에게는 정치적 구심점이 된 한사람이 있었다

바로 대량원군

 

 

 

 

이들의 결집에 결정적 빌미가 된 한 사건이 있었다

 

 

 

 

목종 6년(1003년)

 

 천추태후가 김치양의 아들을 낳은 것이다

 

 


 

유학자들은 이 아이가 장차 왕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학자들에게 김치양의 아들이 즉위 한다는 것은

 고려 왕조를 부정하는 일 이었다

 


정치적인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던 상황

천추태후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천추태후는 결국 대량원군을 승려로 출가시켜 보냈다

 

 

 

이는 당시 정적제거의 주요 수단이었다

 

 

 


목종 12년

 


 

 

천추궁이 불길에 휩싸였다

천추궁 옆 기름창고에서 난 불이 옮겨 붙어 발생한 화재였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고라고 보기엔 사건의 여파가 너무 컸다

 

 

화재가 있은 후 궁궐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고려사는 누군가 정변을 일으키려 했다고 적고 있다

그가 정변을 계획하고 천추궁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정변의 주도자로 지목된 것은 ' 김치양 '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

 


국경지역에 최정예 부대를 이끌고 있던 강조
그는 화재 사건 후 5천 군사를 대동해 궁으로 향했다

 

강조는 목종이 이미 죽었고 김치양이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출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되돌리기엔

 때가 늦었다고 판단한 강조는 결국 궁으로 입성한다

(뭐야.... 얼떨결에 쿠데타냐.... ㄱ-)

 

그는 김치양 부자와 그 측근 세력들을 모두 죽였다

천추태후의 친척 30여명은 섬으로 귀양보냈다

 

그리고 끝내 목종 마저 폐위시킨다

강조의 쿠데타로 결국 목종과 천추태후의 세력은 제거되고

왕위에 오른 이는 바로 대량원군 이었다

 

 

 

 


그런데 고려사에 기록된 당시의 정황을 잘 살펴보면

쿠데타에 실제 배후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로 유학자들 이었다

 

 

 

 

 


목종이 폐위 된 후 천추태후도 궁 밖으로 쫓겨났다


12년간 섭정을 하며 고려를 이끌었던 천추태후
아들과 함께 떠나는 그녀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대 고구려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고려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자 했던 천추태후

 

 

 

 

 


두 아들의 죽음과 함께 천추태후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천추태후는 66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자유롭고 당당했던 한 여자로서,
고려의 운명을 짊어졌던 한 정치가로서,
당대 최고의 여걸로 살았던 천추태후

 

그러나 유학자들과의 갈등 속에서 천추태후는

끝내 불륜한 여자로 기록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에서

 천추태후의 정치적 업적들은 모두 철저히 외면당했다
남성중심의 윤리와 유교 이념 속에서

윤리적이지 못하고 세속적인 왕후로 매도당했던 천추태후

 

 

그러나 천추태후는 음탕한 여자도 권력에 눈이 먼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고려 500년을 통해 여성으로서

 가장 강력한 정치권력을 행사한 고려 최고의 여걸이었다

 

 

 

 

 


 

 

 

 

 

+ 오타나 맞춤법 지적 환영합니다

사진이나 음악이 제대로 안나오면 말씀 해주세요

 

  

 

+ 전 편 들은 각각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1부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769 

세종대왕 2부 " 소리가 하늘이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822

광해군 "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1973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백제를 멸하리라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2180
백제 성왕 "일본의 비불로 환생하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2466 

고구려 여인 우씨 " 두번 왕후가 되다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2777 

공민왕과 노국공주 " 신화가 된 사랑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303061 

 

 

+ 다음 편은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소현세자빈 강씨 " 편 입니다

 혈압 올라서 ㅅㅂ을 연발하시게 될겁니다...................

마음의 준비와, 청심환이랑 냉수 하나 준비하..

 

+  원래 춘추태후 편은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야 되는데 이번 편은 좀 지루하네요..ㅠㅠ

그래도 재밌다고 해주시는 분들 덕에 힘내서 열심히 편집하고 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보고 있어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enough. wh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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